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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뇌 (ADHD, 우울증, 러너스하이)

by 기타은씨 2026. 5. 8.

공원에서 달리기
공원에서 달리기

 

달리기 한 번으로 혈중 BDNF 농도가 크게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지독하게 힘들었던 직장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게 달리기와 스피닝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BDNF와 도파민, 달리기가 뇌에 하는 일

달리기를 하면 뇌 안에서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여기서 BDNF란 신경세포의 수를 늘리고, 신경세포의 가지와 길이를 성장시키는 데 직접 관여하는 단백질입니다. 쉽게 말해 뇌를 물리적으로 더 풍성하게 만드는 비료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ADHD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도파민 시스템과의 연관성도 확인됐습니다.

ADHD는 전전두엽의 도파민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전두엽이란 계획 수립, 충동 조절, 주의 집중 같은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이곳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집중력 저하나 과잉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이 영역의 발달을 돕는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8세에서 10세 사이 ADHD 아동들에게 20분 운동을 한 차례만 시켜도 주의 집중력과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는 결과도 있고, 성인 ADHD를 대상으로 한 30분 유산소 운동 실험에서도 집행 기능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저도 상사 때문에 극도로 지쳐 있던 시기에, 퇴근하고 나서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달리거나 스피닝을 타고 땀을 쏟아내고 나면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닌데도 머릿속이 훨씬 가벼워지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게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뇌에서 실제로 뭔가가 바뀌고 있었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러너스하이와 평정심, 달리기가 마음에 하는 일

달리기를 좀 하다 보면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는 표현을 듣게 됩니다. 러너스하이란 달리기 중 특정 시점부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편안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 실체는 엔도르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 같은 호르몬입니다. 여기서 엔도카나비노이드란 뇌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물질로, 마리화나와 유사한 진통 효과를 만들어내며 통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러너스하이보다 '러너스캄다운(Runner's Calm Down)'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 평정심은 단순히 기분 좋은 것과는 다릅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가 활성화될 때 마음이 흔들립니다. 편도체란 외부 위협에 대한 감정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핵심 영역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이 영역을 자극합니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은 코르티솔 분비를 제어하는 능력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편도체 과활성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달리기가 국가대표 프리다이버 김혜미 선수에게 체력 훈련이 아닌 멘탈 관리 수단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도 비슷합니다. 어이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던 상사 아래에서, 신입 직원에게 저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을 입으로 했던 그 사람 밑에서 버텼던 건 달리기가 있어서였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그 사람 생각이 끊겼고, 끝나고 나면 적어도 내일 출근은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컸습니다.

달리기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심리적 효과는 뇌의 DMN(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활성화입니다. DMN이란 특정 과제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네트워크로, 마치 명상 상태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달리기는 별다른 기술 없이 리듬과 감각에만 집중하게 되므로, 이 상태에 들어가기 상대적으로 쉬운 운동입니다.

달리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달리기가 ADHD와 우울증에 보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4주간의 달리기 실험에서 중등도 우울 증상이 정상 범주로 회복된 사례가 있을 정도입니다.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즉 뇌가 평생에 걸쳐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질 덕분에 이런 변화가 가능합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 가소성이 활발하게 작용하므로,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함께 달리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

그런데 요즘 러닝 붐이 생기면서 준비 없이 바로 뛰는 분들을 꽤 봤습니다. 제가 직접 봐온 경험상, 이게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몸이 달리기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작하면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오기 쉽고, 결국 오래 못 합니다.

달리기를 안전하게 시작하려면 아래 순서를 기억해두시는 게 좋습니다.

  • 충분한 워밍업으로 관절과 근육 온도를 먼저 올린다
  • 동적 스트레칭으로 고관절, 햄스트링, 발목 가동 범위를 확보한다
  • 처음에는 옆 사람과 짧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대화 테스트)로 시작한다
  • 어르신이나 초보자는 슬로우 조깅 또는 빠른 걷기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 달리기 후 정적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해 근육 회복을 돕는다

육상
육상

 

여기서 대화 테스트란 달리는 중에도 옆 사람과 짧은 문장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리킵니다. 이 수준의 유산소 운동만으로도 뇌와 심폐에 충분한 자극이 전달됩니다. 숨이 턱까지 차야 운동이 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세게 하는 것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달리기는 분명 좋은 운동입니다. 다만 이게 지속되려면 다치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이직하고 나서 지금도 꾸준히 달리고 있는데, 그 시절 버티게 해줬던 습관이 지금은 그냥 제 일상이 됐습니다. 거창한 목표 없이, 일단 몸이 기억하게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이 됩니다. 준비운동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ADHD나 우울증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NVk2lEw3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