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kg에서 38kg을 뺀 사람이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도, 운동량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을 들여다보니, 다이어트에 대해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이 꽤 많이 틀려 있었습니다.
왜 의지만으론 고도비만을 못 빼는가 — 세트포인트의 함정
일반적으로 살을 못 빼는 건 의지가 약해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내분비 대사 체계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체중 세트포인트(weight set point)란 몸이 특정 체중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그 수준을 유지하려는 대사적 기준값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보일러 온도 조절기처럼 몸이 특정 숫자에 고정되어 있고, 그 숫자에서 멀어지면 강하게 되돌아가려는 반발이 생깁니다.
이 세트포인트가 높게 고정된 고도비만 환자는 식욕 조절, 소화 속도, 지방 축적 방식까지 전부 그 체중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식단을 줄이고 운동을 해도 결국 원래 체중으로 스프링처럼 돌아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분들을 보면서 느낀 것도 똑같습니다. 몇 달을 고생해서 뺀 체중이 한두 달 만에 다 돌아오는 걸 반복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설정값 문제였습니다.
이 세트포인트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식단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덴마크 다이어트로 단기에 큰 감량을 하더라도, 극도로 제한된 식단이 끝나는 순간 몸은 고스란히 원래 세트포인트로 복귀하려 합니다. 황제 다이어트,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 간헐적 단식, 삭센다까지 다 해봐도 지속 가능하면 효과가 약하고, 효과가 강하면 지속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이어트 방식을 선택할 때 실패하는 대표적인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 효과에만 집중해 극단적인 식이 제한 → 세트포인트 변화 없이 일시적 감량만 발생
- 간헐적 단식 중 허용 시간에 과식 → 총 칼로리 차이가 없어 효과 미미
- 저탄고지 식단 중 단백질 과잉 섭취 → 탄수화물 배제 시 포도당신생합성(gluconeogenesis)으로 근육 분해 발생
- 체중 감량 후 관리 중단 → 세트포인트 복귀로 빠른 요요 현상
여기서 포도당신생합성이란 탄수화물이 부족할 때 몸이 근육 단백질 등을 분해해서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과도하면 근육량이 줄고, 기초대사량까지 떨어져서 나중엔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몸이 됩니다. 무조건 탄수화물을 끊는 게 능사가 아닌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탄수화물이 전체 에너지의 50% 수준일 때 장수와 연관된 결과가 나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비만치료제의 실제 효과와 한계 — 기회인가, 의존인가
최근 가장 주목받는 비만 치료제는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 계열입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란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의 작용을 모방해 식욕을 억제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는 약물입니다.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의 약이 대표적이며, 일론 머스크가 사용해 화제가 된 것도 이 계열입니다. 기존의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경로를 건드리는 식욕 억제제들이 신경 계통 부작용 문제를 일으켰던 것과 달리, 이 계열은 장 호르몬 자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작용 경로가 다릅니다.
저도 실제로 이 약물을 사용한 분들을 여럿 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효과는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만성 췌장염 병력자, 갑상선 수질암 환자, 임신부 또는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에게는 금기이며, 단계적 증량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이 원칙을 무시하고 빠른 효과를 위해 용량을 임의로 올렸다가 오심, 구토, 심한 설사로 입원 수액 치료까지 받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약을 끊으면 체중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이미 여러 임상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약이 체중 세트포인트를 무력화하는 동안 살이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약을 끊는 순간 다시 그 설정값으로 복귀하려는 힘이 작동합니다. 저는 그래서 비만치료제를 "기회"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이 답이 아니라, 약이 만들어 준 시간 안에 본인이 뭘 바꾸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그게 안 되면, 약을 끊은 이후의 결과는 뻔합니다.
약보다 오래가는 것 — 생활습관이 결국 마지막 답이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다이어트 약물을 쓰면 효과를 보다가 끊고 나서 요요가 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실제로 본 사례들은 두 유형으로 뚜렷하게 갈렸습니다. 약만 믿고 식습관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 분들은 예외 없이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면, 제가 함께 관리한 분 중 한 분은 약물의 도움으로 15kg 감량의 시작을 만들고, 그 이후 식습관과 운동 습관까지 바꿔서 지금도 스스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약이 만들어 준 감량 구간을 활용해 본인을 바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합니다.
술이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도 제 생각엔 생각보다 훨씬 큰 변수입니다. 알코올은 지방 산화(fat oxidation)를 직접 억제합니다. 지방 산화란 몸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분해하는 과정으로, 이게 막히면 아무리 식단을 조절해도 지방 연소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거기에 식욕 자극까지 더해지니, 저녁 식단을 잘 지키다가도 술 한 잔에 무너지는 사이클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수면 부족이 식욕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을 증가시키고 포만감 호르몬인 렙틴(leptin)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검증되었습니다(출처: 국립수면재단). 그렐린은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이고, 렙틴은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이 두 호르몬의 균형이 무너져, 같은 식단으로도 더 많이 먹고 싶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생활습관에서 실질적으로 챙겨야 할 핵심은 단순합니다.
- 하루 30분, 숨이 차는 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할 것
- 식사 속도를 줄이고, 배가 80% 찼다는 느낌에서 숟가락을 놓는 연습을 할 것
-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것
- 술을 다이어트의 최대 적으로 인식하고 가능한 줄일 것
- 체중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습관의 변화에 집중할 것
결국 다이어트는 약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어설픈 각오로 약부터 찾는 분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약은 몸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을 잠깐 열어줄 뿐이고, 그 창 안에서 본인이 뭘 바꾸느냐가 1년 후, 3년 후를 결정합니다. 체중 감량에 성공한 분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약이나 식단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약을 쓰든 안 쓰든, 본인이 안 바뀌면 몸도 결국 안 바뀝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영양 조언이 아닙니다. 체중 관련 약물 사용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 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fRC_uGTGlU